p47
까마득히 오래전 의 티번강은 사라져 지리학자들과 역사학자들마저 그 존재를 잊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내가 주의 깊게 기록한 로어 리치먼 드 로드의 건물들 역시 위태롭게, 일시적으로 존재했다고 생 각한다. 전쟁을 통과하며 거대한 건물들이 사라졌듯이, 우리 의 어머니와 아버지 들을 잃었듯이
p144
이것이 우리가 진실을 발견하고 진화하는 과정일까? 정확하 지 않은 기억의 조각들을 짜맞추는 일? 어머니만이 아니라 애 그니스, 레이철 누나, 코마 씨(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까지. 내 게 불완전하고 되찾을 수 없는 존재로 남은 그들 모두가, 내 과 거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분명하고 명확해지는 걸까? 안 그러 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진실하게 알지 못한 채 지나온 청소년 기라는 드넓고 험악한 지형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자아는 중요한 것이 아니야." 언젠가 올리브 로런스가 내게 해 준 말은 반쪽짜리 지혜일 뿐이었다
p145
지금 돌이켜 보면 호기심과 기쁨이 비쳤던 여자의 얼굴도. 그 리고 올리브 로런스가 떠난 일, 아서 매캐시가 나타난 것, 나 방이 지켰던 침묵의 범위도… 현재로 무장한 채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그곳이 아무리 어두워도 결국에는 불을 밝히고 떠나게 마련이다. 어른이 된 자신의 자아를 가져가니까. 과거 를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목격하는 것이다. 물론 내 누나처럼 그들 모두에게 엿이나 먹으라 하고 복수를 감행한다 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p259~260
"그림자 속에 숨은 물고기는 더 이상 물고기가 아니야. 풍경의 일부지 마치 다른 언어를 가진 것처럼. 우리도 가끔은 남들이 몰라 주기를 바랄때가 있잖니. 예컨대 너는 지금 예전부터 알아 온 나를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인 나는 모르지. 이해되니?"
p326
십 대의 우리는 어리석다. 잘못된 말을 하는가 하면, 겸손하게 처신하는 법도 모르고, 수줍음을 덜 타는 법도 모른다. 섣 부른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하니 비로소 보이는 것이, 그런 우리에게 주어졌던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변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배우고 또 성장한다. 지금의 나 는 과거의 내게 일어났던 일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내가 성 취한 것들이 아니라, 내가 여기까지 도달한 방법에 따라서 말 이다. 그런데 여기 오기까지 내가 누구를 아프게 했을까? 누 가 나를 더 나은 무언가로 이끌어 주었나? 또는 내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소한 것들을 받아 준 사람은 누 구였나? 거짓말하면서 웃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은? 나방에 대해 내가 믿게 된 것들을 반신반의하게 만든 사람은? 사람의 '성격'에서 더 나아가 그 사람이 타인에게 무엇을 할지에 관심 을 기울이게 해 준 이는 누구였나?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얼 마나 많은 피해를 줬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