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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책203

[궈창성] 피아노 조율사 ![](https://minumsa.minumsa.com/wp-content/uploads/bookcover/%ED%94%BC%EC%95%84%EB%85%B8%EC%A1%B0%EC%9C%A8%EC%82%AC_%ED%91%9C1-300x440.jpg)p45하지만 빛이 난다고 세상의 모든 피아노가 저마다 음이 다르다는 사실까지 바뀌지는 않는다. 반면 대다수 사람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자기들이 듣는 음이 전부 표준적이고 완 벽하다고 확신한다. 이것이 바로 문명의 힘이다. 솔직히 말해, 인간도 태생적으로 완벽하지 못한 또 다 른 물건에 불과하다. 우리도 똑같이 영혼이나 신성함, 사 랑, 아름다움 등 추상적인 말로 포장되지 않는가? 문명은 늘 우리한테 사물을 무조건적으로 숭배하면 된 다고, 절대 의심하지 말라고 .. 2025. 7. 21.
[배지영] 담이, 화이 p119화이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 버렸다. 소름 끼치는 짓? 그게 뭘까. 화이는 P에 대해 알아본 것뿐이다. 사랑해 달란 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 모든 게 사랑이 아니면 뭐냐고 말하고도 싶었다. 사랑이 아니었다는 걸 왜 자신이 증명해야 하냐고 항의하고 싶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마음이 왜 소름 끼치는 일이 되는 건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P 가 해야 했다. P의 와이프가 와서는 안 될 자리였다. '그게 돼요?' 그날 밤 그 질문이 화이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 안 돼? 누가 같이 살겠대? 그냥 따듯해지고 싶을 뿐인 데. 그러면 안 돼?' 화이는 생각했다.p174첫 번째 거짓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교해졌다. 반면에 다 른 거짓말들은 성의 없이 아무렇게나 지어내느라 기억도 나 지.. 2025. 7. 18.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그녀를 지키다 메티가 작품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는 마리아의 얼굴을, 내가 알았던 그 무한한 온화함을 쓰다듬었고, 그러고는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더니, 천천히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왼손이 존재하지 않는 오른팔을 향해 움직였지만, 좌절될 행위였다. 「털고 일어설 수 없는 부재들이 있지.」나의 사랑하는 미모, 네가 오래 버티지 못하리라는 걸, 네가 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이 편지를 열어 보리라는 걸 알았지. 나는 그저 내가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피렌체에서, 그리고 내게 포기하라고 부탁하면서 오늘 저녁에 또 한 번, 그러고는 이 편지를 열어 보면서, 이렇게 매번 나를 배신할 때마다 늘 애정으로 그랬다는 걸 알아. 난 결코 너를 원망하지 않았어, 진심으로 그런 적은 없어. 너의 사랑하는 친구, 비올.. 2025. 7. 17.
[마이클 온다치] 기억의 빛 p47까마득히 오래전 의 티번강은 사라져 지리학자들과 역사학자들마저 그 존재를 잊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내가 주의 깊게 기록한 로어 리치먼 드 로드의 건물들 역시 위태롭게, 일시적으로 존재했다고 생 각한다. 전쟁을 통과하며 거대한 건물들이 사라졌듯이, 우리 의 어머니와 아버지 들을 잃었듯이p144이것이 우리가 진실을 발견하고 진화하는 과정일까? 정확하 지 않은 기억의 조각들을 짜맞추는 일? 어머니만이 아니라 애 그니스, 레이철 누나, 코마 씨(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까지. 내 게 불완전하고 되찾을 수 없는 존재로 남은 그들 모두가, 내 과 거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분명하고 명확해지는 걸까? 안 그러 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진실하게 알지 못한 채 지나온 청소년 기라는 드넓고 험악한 지형에서 어떻게 살아남.. 2025. 7. 14.
스토너 [존 윌리엄스]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젊은 시절의 어색함과 서투름은 아직 남아 있는 반면, 어쩌면 우정을 쌓는 데 도움이 되었을 솔직함과 열정은 사라져버린 탓이었다. 그는 자신의 소망이 불가능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이 그를 슬프게 했다.“몰랐소.” 윌리엄이 말했다. “나는 당신이 아주 정숙한 숙녀라고 생각했거든.” 그녀는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요, 정숙하고 말고요!” 그녀는 조금 차분해져서 과거를 돌아보는 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나도 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정숙함을 던져버릴 이유가 없을 때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정숙해 보이는지! 자신에 .. 2024. 12. 14.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박상영] 아침 일찍 출근해서 싫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억지로 만들어지는 루틴이 때로는 인간을 구원하기도 한다. 싫은 사람일지언정 그가 주는 어떤 스트레스가 긍정적인 자극이 되어주기도 하며, 한 줌의 월급은 지푸라기처럼 날아가버릴 수 있는 생의 감각을 현실에 묶어놓기도 한다. 밥벌이는 참 더럽고 치사하지만, 인간에게, 모든 생명에게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생이라는 명제 앞에서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바위를 짊어진 시시포스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나는 이제 더 이상 거창한 꿈과 목표를, 희망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 삶이 어떤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감각하고 있는 현실의 연속이라 여기기로 했다. 현실이 현실을 살게 하고, 하루가 또 하루를 버티게 만들기도 한다. 설사 오늘 밤도 .. 2024.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