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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책201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그녀를 지키다 메티가 작품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는 마리아의 얼굴을, 내가 알았던 그 무한한 온화함을 쓰다듬었고, 그러고는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더니, 천천히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왼손이 존재하지 않는 오른팔을 향해 움직였지만, 좌절될 행위였다. 「털고 일어설 수 없는 부재들이 있지.」나의 사랑하는 미모, 네가 오래 버티지 못하리라는 걸, 네가 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이 편지를 열어 보리라는 걸 알았지. 나는 그저 내가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피렌체에서, 그리고 내게 포기하라고 부탁하면서 오늘 저녁에 또 한 번, 그러고는 이 편지를 열어 보면서, 이렇게 매번 나를 배신할 때마다 늘 애정으로 그랬다는 걸 알아. 난 결코 너를 원망하지 않았어, 진심으로 그런 적은 없어. 너의 사랑하는 친구, 비올.. 2025. 7. 17.
[마이클 온다치] 기억의 빛 p47까마득히 오래전 의 티번강은 사라져 지리학자들과 역사학자들마저 그 존재를 잊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내가 주의 깊게 기록한 로어 리치먼 드 로드의 건물들 역시 위태롭게, 일시적으로 존재했다고 생 각한다. 전쟁을 통과하며 거대한 건물들이 사라졌듯이, 우리 의 어머니와 아버지 들을 잃었듯이p144이것이 우리가 진실을 발견하고 진화하는 과정일까? 정확하 지 않은 기억의 조각들을 짜맞추는 일? 어머니만이 아니라 애 그니스, 레이철 누나, 코마 씨(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까지. 내 게 불완전하고 되찾을 수 없는 존재로 남은 그들 모두가, 내 과 거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분명하고 명확해지는 걸까? 안 그러 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진실하게 알지 못한 채 지나온 청소년 기라는 드넓고 험악한 지형에서 어떻게 살아남.. 2025. 7. 14.
스토너 [존 윌리엄스]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젊은 시절의 어색함과 서투름은 아직 남아 있는 반면, 어쩌면 우정을 쌓는 데 도움이 되었을 솔직함과 열정은 사라져버린 탓이었다. 그는 자신의 소망이 불가능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이 그를 슬프게 했다.“몰랐소.” 윌리엄이 말했다. “나는 당신이 아주 정숙한 숙녀라고 생각했거든.” 그녀는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요, 정숙하고 말고요!” 그녀는 조금 차분해져서 과거를 돌아보는 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나도 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정숙함을 던져버릴 이유가 없을 때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정숙해 보이는지! 자신에 .. 2024. 12. 14.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박상영] 아침 일찍 출근해서 싫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억지로 만들어지는 루틴이 때로는 인간을 구원하기도 한다. 싫은 사람일지언정 그가 주는 어떤 스트레스가 긍정적인 자극이 되어주기도 하며, 한 줌의 월급은 지푸라기처럼 날아가버릴 수 있는 생의 감각을 현실에 묶어놓기도 한다. 밥벌이는 참 더럽고 치사하지만, 인간에게, 모든 생명에게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생이라는 명제 앞에서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바위를 짊어진 시시포스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나는 이제 더 이상 거창한 꿈과 목표를, 희망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 삶이 어떤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감각하고 있는 현실의 연속이라 여기기로 했다. 현실이 현실을 살게 하고, 하루가 또 하루를 버티게 만들기도 한다. 설사 오늘 밤도 .. 2024. 12. 14.
다정한 매일매일 [백수린] 행복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상을 괄호 안에 넣어두는 휴가가 삶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것처럼, 인간에게는 때로 진실을 괄호 안에 넣어두는 거짓말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부드러운 모래가 나른한 꿈처럼 펼쳐지고, 뜨거운 태양 아래 올리브가 익는 곳에서의 휴가를 닮은, 미혹으로 가득 찼지만 아름다운 거짓말이. 하지만 여름의 끝을 알리는 폭우마저 그치고 나면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트렁크를 창고 깊숙이 넣어두어야만 한다. 틀림없이 쓸쓸하고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한 일이지만, 계절은 바뀌고, 괄호 안에 넣어두었던 것들과 대면해야 하는 시간은 우리를 어김없이 찾아오니까.죽는 것과 사는 것, 무언가를 쌓기 위해 시간을 견디고 오래도록 한자리를 지키는 것과 축적한 것들을 .. 2024. 12. 14.
김미경의 딥마인드 [김미경] ![](https://contents.kyobobook.co.kr/sih/fit-in/458x0/pdt/9791198013088.jpg)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마음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의심 없이 그 목소리가 나라고 믿는다. 그게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내가 하는 말이니 시키는 대로 한다. 뛰라면 뛰고 죽으라면 죽는다. 그런데 그게 내가 아닐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처음부터 의심하고 가려내야 한다. 무엇이 진짜 내가 하는 말이고 잇마인드가 하는 말인지. 그래야 진정 잇이 아닌 아이엠으로,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 수 있다. 2024. 1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