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다/책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그 이름만으로 하나의 ‘장르’이자 ‘브랜드’인 작가 은희경, 그 다섯번째 소설집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1995 년 데뷔, 등단 20년차인 작가에게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이하 『눈송이』)는 그의 다섯번째 소설집이자, 열두 권째 작품집이다.(소설 외에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들』이 있다.) 연재를 하고 계절마다 단편을 쓰고, 그것들을 모으고 정리해 책을 내는 시간들을 생각하면, 작가는 그동안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고 작품을 쓰고 책을 묶었다. 20년, 작가의 첫 책 『새의 선물』에 열광했던 이들의 딸들이 자라 다시 그의 책을 집어드는 시간이다. ‘은희경’은 엄마와 딸이 함께 읽는 브랜드/장르이다. 어떤 시간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풍경은 늘 그렇게 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조금은 다를 것이다. 결국 시간이 개입된다는 뜻이겠지. 풍경을 보기 위해 내가 간다. 대체로 헤맸다. 익숙한 시간은 온 적이 없다. 늘 배워왔으나 숙련이 되지 않는 성격을 가진 탓이고 가까운 사람들이 자주 낯설어지는 까닭이다. 왜 그럴까. 시간이 작동되는 것이겠지. 내 탓도 네 탓도 아니다. 내가 어떻게 그곳에 닿느냐에 따라 풍경이 달라진다고 여겼을 때는 그랬다는 말이다. 지금 이 풍경 앞에서 생각한다. 내가 풍경으로 간 것이 아니라 실려갔다. 떠밀려간 것도 아니고 스침과 흩어짐이 나를 거기로 데려갔다. 이런 생각을 하던 시간들이 이 책 속 이야기가 되었다. 쓸 수 있다, 고마운 일이다.
_은희경, 작가의 말

‘작 가의 말’에서 그는 ‘시간’과 그 시간이 데려간 ‘풍경’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떠밀려간 것이 아니라 스침과 흩어짐이 데려”간 그곳에 대해. 그래서일까. 우리를 관통하고 지나간 그 시간의 흔적들을 그가 쫓아간 때문일까. 『눈송이』에 수록된 여섯 편의 소설들은 느슨하면서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유사한 인물들과 동일한 공간들이 여러 소설들에서 겹쳐지고, 에피소드와 모티프가 교차한다. 그리고 여섯 편의 소설들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마지막 작품 「금성녀」에 이르면, 그것들이 단지 희미한 유사성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작품집은, ‘눈송이 연작’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난의 눈송이
 - 고독한 사람에 대해서 사람들은 늘 오해한다. 그들은 강하지도 않고 메마르지도 않았으며 혼자 있기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해도 사람은 늘 자기만의 고독을 갖고 있다. 우리 모두는 코코슈카의 잠 못 드는 연인처럼 서로를 껴안은 채 각기 푸른 파도의 폭풍우 속을 떠내려간다.
 "이 지상에서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비바람치는 밤하늘을 떠돌더라도 우리는 영원히 함께 있어야 한다."


# 프랑스어 초급과정
 - 그녀는 색각했다. 하지만 낯선 곳에 가야 한다고 해서 저렇게 흐느껴 우는 건 아직 인생이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는걸 모르기 때문이야. 매순간 예상치 않았던 낯선 곳에 당도하는 것이 삶이고, 그곳이 어디든 뿌리를 내려야만 닥쳐오는 시간을 흘려보낼수 있어. 그리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꿈만이 가까스로 그 뿌리를 지탱해준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대단한 미빌이라도 되는 건 아닐테지.


#스페인 도둑
 - 필요한 건 다 있었고 점점 더 편리하게 바뀌어가고 있었으며 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들은 쉽게 버려졌다. 취향이 생겨날 시간조차 주지 않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말대로 오래된 것은 천천히 변하지만 새로운 것은 더욱 빨리 변하는 건지도 모른다.
 - 방치하는 건 방향이 없다는 점에서 대처하기가 더욱 까다로운 폭력이었다. 자기 존중감을 박탈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랑을 좌절시킨다는 점에서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은 죽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어머니의 말을 완은 이제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EVERNOTE 2014.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