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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책

높고 푸른 사다리



“사랑했으니까요."

 - “말하기로 했어. 내가 세운 규칙이 부질없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어.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어. 나는 내 부족함을 울기로 했어. 나는 내가 병들고 늙고 죽어가는 슬픈 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어”

- 아주 조그만 우리의 추억들을 지켜본 나무들이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그 작지만 진한 기억을 조그만 보라빛과 진분홍빛 꽃으로 조롱조롱 피워 손님의 집 앞에 흩뿌려놓은 것 같았다. 죄책감을 동반하면 더욱 진해지곤 하는 사랑이 내 가슴속으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을 듯이 밀려왔다. 며칠 전까지 그녀의 나풀거리는 스커트가 여기를 스쳐 지나갔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처음 사랑을 가진자가 맛보는 모든 것, 고독과 질투, 그리고 그리움에 내가 이미 깊숙히 잠식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 가끔씩 평범한 질문 앞에서 우리는 운명을 대답해야 함을 느낀다. 갑자기 벼랑 끝에라도 선 듯 삶이 위태롭게 느껴졌다. 내가 무난한 대답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내게 배반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이탈을 시인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중단과 거짓의 편에 섬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운명의 노크 소리처럼 그것은 내게 진실과 거짓 양쪽 중에 선택을 강요하는 듯했다.

- “죽은 사람이야 하느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실까 싶은데 아직 이렇게 살아있는…”
  “이렇게 펄펄 살아 있는, 당신이 정말 걱정이 되었어요. 많이 힘들었죠? 얼마나 힘들었나요?”

-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모호함이다. 모호함 중에서도 진한 불행의 기미를 가진 모호함이다. 기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 그것도 그 사건의 여파에 대한 불신, 모호함 때문이며, 그보다 더, 가족의 죽음보다 더 실종이 고통스러운 까닭도 그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차악의 희망인 체념조차 불가능하게 하니까.

- 우리 둘의 사랑의 비밀을 모르는 것은 우리 둘뿐.


“대체, 왜?"




EVERNOTE 2013.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