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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ETC

걱정 인형


겁많은 나은양 선물...



 잠자리에서 걱정이나 고민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다. 그러면서도 들러붙어 갈 생각을 좀체 하지 않는 달갑잖은 손님이다. 걱정이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해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걱정은 잠을 갉아먹고, 뒤척이는 밤을 강요한다. 걱정은 아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

내일은 무슨 신 나는 일이 벌어질까, 하며 곯아떨어져야 하는 게 아이다. 어린 아이가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 안타까움이 중부 아메리카 과테말라(Guatemala)에서는 ‘걱정 인형’을 낳았다.

걱정 인형은 ‘걱정일랑 내게 맡겨. 그리고 너는 잠이나 자.’라고 속삭인다. 듣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그 듬직한 역할 덕분에 걱정 인형은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세계의 여러 인형들 중에서 외모로만 치자면 크기도 가장 작을 뿐더러 얼굴 역시 그리 예쁘지 않은, 특이한 인형이다.

걱정 인형은 옛 마야 문명의 발상지인 중부 아메리카의 과테말라에서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인형이다.
나무 상자 안의 걱정 인형

아이가 걱정이나 공포로 잠들지 못할 때 부모들은 작은 천 가방, 혹은 나무 상자에 인형을 넣어 아이에게 선물해줬다. 그 속엔 보통 6개의 걱정 인형이 들어가 있다. 아이가 하루에 하나씩 인형을 꺼내 자신의 걱정을 말하고 베개 밑에 넣어두면 부모는 베개 속의 걱정 인형을 치워버린다. 그리고 아이에게 “네 걱정은 인형이 가져갔단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과정이 특히 중요하다. 아이들은 인형이 자신의 걱정과 함께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걱정 인형에게 자기의 걱정거리를 이야기하는 순간부터 걱정을 지워나간다. 부모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크고 작은 모든 걱정들을 털어놓을 수 있다. ‘걱정 인형이 내 걱정을 대신해줄 것’이란 믿음은 의학적으로도 유용한 ‘처방’이다. 실제로 병원이나 아동상담센터 등에서 아이들의 수면 장애나 심리 치료의 목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걱정이 없어진다는 믿음이 진짜로 걱정을 없애는 것이다.

걱정 인형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몇 세대 전쯤으로 추정된다.


걱정 인형의 유래로 전해지는 이야기


 오래전, 작은 도시 외곽의 언덕에 한 노인과 그의 딸 플로라, 그리고 플로라의 아들 디에고와 딸 마리아가 함께 살았다. 여느 과테말라 사람들처럼 그들의 집에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수돗물도 없었다. 가난했지만 가족들은 행복했다. 모두 열심히 일했고 플로라가 그들에게 화려한 옷을 만들어주는 데 감사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옛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족들은 모두 생계를 위해 일했다.

마리아는 베틀로 천을 짜는 엄마를 도왔다. 플로라는 어머니에게서 배운 대로 마리아에게 베 짜는 법을 가르쳤다. 이 기술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내려왔다. 마리아는 엄마가 베 짜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다. 플로라는 가장 아름다운 옷감을 만들었다. 그녀가 천을 잘 짜는 것은 행운이었다. 가뭄이 있을 때면 플로라의 천을 팔아 생계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이들이 잠들자 엄마 플로라도 정성들여 짠 천을 바구니에 담아 아들 디에고가 자는 해먹 밑에 넣어두고 잠들었다.

그날 밤 마리아는 잠꼬대를 했다. 그 소리에 잠이 깬 디에고는 도둑이 자신의 해먹 밑에 있는 바구니 속의 천을 훔쳐 달아나는 것을 발견했다. “도둑이야, 도둑!” 디에고가 소리쳤지만 도둑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할아버지와 엄마도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도둑은 엄마가 짠 천을 모두 훔쳐 달아났다. 절망한 플로라는 밤새 흐느껴 울었다.

다음 날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 엄마는 열에 시달리며 해먹에 누워 있었다. 할아버지가 그녀를 돌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엄마의 열은 더 높아졌고 그들이 먹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곰곰이 생각에 빠져 있던 마리아가 말했다.

“내게 좋은 수가 있어.”

마리아는 엄마의 천이 들어 있던 바구니를 봤다. 그리고 뭔가 남은 것이 있는지 살폈다. 바구니에 남은 것은 괴상한 색깔과 모양의 천 조각들이 고작이었다. “조그마한 나뭇가지들을 모아서 여기 갖다 줘.” 그녀가 디에고에게 부탁했다. 디에고는 재빨리 나뭇가지를 모으러 나갔다. 마리아는 천 조각들을 색과 크기별로 나누어 정리했다. 디에고가 나뭇가지를 들고 돌아오자, 둘은 무언가 만들기 시작했다.

밤이 늦어서야 일이 끝났다. 옷을 입은 열두 개의 작은 인형, 그리고 인형들이 잘 수 있는 작은 주머니가 만들어졌다. 아이들은 한 주머니에 여섯 개씩 인형을 넣었다. 마리아는 언젠가 할아버지로부터 ‘소원을 들어주는 인형’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사실을 기억해내곤 그녀가 만든 인형들이 힘든 처지에 놓인 가족들을 위해 마법을 부려 주길 희망했다.

마리아는 마음에 드는 색깔의 주머니를 골랐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인형들을 꺼내 손바닥 위에 놓고 말했다. “친구들아 잘 자렴. 가족들이 곤경에 처해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해. 우리 밭은 가뭄으로 말라붙었고, 엄마는 아파. 음식도 돈도 없어, 엄마가 옷을 만들려고 둔 천을 모두 도둑맞았어. 우리를 도와줘.” 마리아는 인형들을 주머니에 넣어서 베개 밑에 놓았다. 그날 밤 그녀는 단잠을 잤다.

마리아가 일어났을 때 인형들이 주머니 밖으로 나와서 테이블 위에 원을 그린 채 누워 있었다. “분명히 지난 밤 베개 밑에 주머니에 넣었는데······” 그녀는 의아해했다.

그날 아침, 마리아와 디에고는 인형 주머니를 챙겨 넣고 시장으로 향했다. 신발도 없던 남매는 먼 길을 맨발로 가야 했다. 막상 좌판을 깔자 마리아는 자신이 없어졌다. 그 작은 인형에 맞는 가격을 얼마로 해야 할까? 이런 것을 파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하루가 끝나가도 장사는 잘 되지 않았다. 시장은 거의 문을 닫았지만 그들은 인형을 하나도 팔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절망했다. 마리아가 인형을 치우려고 할 때, 멋진 옷을 입고 커다란 모자를 쓴 남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을 팔고 있니?” “이 작은 인형들요.” 디에고가 말했다. “마법의 인형이에요!” 마리아가 덧붙였다. 그 남자는 모자를 고쳐 쓰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마법? 흥미롭네. 내가 다 가져갈게!”라고 말했다.

둘은 서둘러 인형을 포장했다. 남자는 남매들에게 돈을 쥐어주었다. “감사합니다.” 마리아가 인사하자 그가 답했다. “천만에!” 남자는 마리아가 돈을 채 확인하기도 전에 돌아서 가버렸다. 돈을 세던 마리아의 입이 벌어졌다. 가족이 일 년을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큰돈이었다.

디에고는 그저 저녁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 음식을 사서 집에 도착한 디에고와 마리아는 엄마와 할아버지 품에 안겼다. “우리가 인형을 팔았어요!” 디에고가 말했다.

마리아는 그날 일을 엄마와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어느덧 들판은 비에 젖었고 가뭄도 끝났다. 어제까지 가족들을 괴롭혔던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이다.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던 마리아는 옷 속에 뭔가 들어있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꺼냈다. 인형을 담았던 주머니였다. 그것이 어떻게 거기 있었을까? 그녀는 확실히 그 남자에게 팔았는데 말이다. 주머니 속에는 작은 메모도 있었다.

“이 인형에게 소원을 말해. 너의 문제를 말해. 너의 꿈을 말해. 그리고 네가 깨어나면, 네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마술을 경험하게 될 거야.”

그 메모에는 아무 이름도 없었다, 단지 큰 모자를 쓴 남자 그림이 작게 그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