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너무 익숙했다. 먼저 작품해설부터 읽었다. 이유를 알았다.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그 영화를 본 기억이... 아주 오래전에... 그때는 원작이 있는 줄 몰랐다. 그런데 책을 보는 내내 다른 영화가 생각났다. 그 영화의 이미지가 독서를 조금 방해했다. 바로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영화인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이다.
P46 그는 한동안 들판을 가로질러서 걸어갔다. 마치 비에 젖은 무거운 공이 머리에 떨어진 것 같았던 기분이 좀 진정되었다.
P75 깊이 잠들지도 못했는데 다시 깼다. 처음에는 몸이 분리되어 바닥으로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이 침대에 그대로 무워 있음을 알았다. '움직일 수 있는 능력도 없는데!' 하고 블로흐는 생각했다. '곱사등이 되었나!' 그는 자신이 갑자기 퇴화된 느낌이 들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말없이 그렇게 누워 있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동작이자 쓸모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분면하고 뚜렷하게 누워 있었기 때문에 어떤 다른 모습이 될 수는 없었다. 그의 모습은 단정치 못하고 거칠고 조화롭지 않아서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할 뿐이었다.
P104 그가 동작이나 대상들에서 이해하는 것은 동작이나 대상물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그때의 감각이나 감정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을 과거의 것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것으로 다시 체험하는 것이었다. 머릿속에서 수치심이나 구토의 대상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수치심과 욕지기를 느끼는 것이다, 구토와 수치심, 이 둘은 너무 강렬해서 온몸이 근질근질하기 시작했다.
P116 이러한 '그래서','왜냐하면','하기 위해' 같은 단어들은 마치 명령하는 말 같아서 사용하지 않고 피하기로 결심했다.
P119 "우리 모두가 그렇게 습관이 되어 있지만, 그러나 우스운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