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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
그들에게 내 꿈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내가 그들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내 꿈에는 내게 아주 중요한 사람들만 나오 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걸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p30
기차를 탄 우리는 객실 두 개에 자리를 잡았다. 머라이어와 내가 두 아이씩 맡았다. 살면서 본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에서 사람들이 기차 에 타서 이런 식으로 객실에 자리를 잡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영 화에서만 봤지 평생 직접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하면 신이 날 거라고 상 상했다. 하지만 지금 하는 일치고 처음 해보는 일이 아닌 것이 별로 없 었고, 그래서인지 과거가 떠오르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제 새로운 일이 라서 설레는 법은 없었다.
p88
사이가 소원해졌으므로 자연스럽게 페기와 나는 함께 살 아파트를 구하자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흔해빠진 일이었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 람은 사랑이 식기 시작하는 순간 결혼하기로 결정한다. 우리 생각은 이 러했다.
p111
그 집을 떠나는 일은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던 날 밤에 시작되었다. 난 부모의 집을 떠나면서 앞으로 두 번 다시 내 부모를 보 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린애가 할 법한 말이었다. 어린애는 누군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바랄 수 있고, 그 일을 직접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도 있지만, 그렇게 죽은 인물이 다시 일어나 예전처럼 살아나가기를 원 하기도 할 것이다. 단지 애초에 그 사람이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게 했던 그 점만 없어진 모습으로 말이다. 난 아빠를 다시는 보지 않기를 바랐고, 그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다시는 아빠를 보지 못할 것이다.
p126
그 월요일은 앞으로 올 월요일과 다를 바 없었다. 나머지 요일도 역 시 앞으로 올 날들과 다를 바 없었던 것처럼. 페기와 나는 각자 화장실 을 쓰는 시간, 복도의 전신거울을 보는 시간, 부엌에서 아침식사 준비 를 하는 시간을 두고 암묵적인 합의를 보았다. 거리 모퉁이에서 페기는 날 안아주었고 볼에 입을 맞추며 행운을 빌어주었다. 그 순간에 담긴 무언가, 아래쪽에 묻혀 있던 무언가로 인해 눈에 눈물이 어렸지만, 우 리는 눈물이 흘러내리기 전에 몸을 돌려 각자의 길을 갔다. 난 고개를 꼿꼿이 들고 거리를 걸으며 눈에 들어오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고, 그 모두가 어떻게 보이고 내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기억하려 했지만, 이 후 내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잡을 것들은 지금 내가 빤히 바라보는 것 들이 아닐 것임을 그때 이미 알았다. 난 사무실에 들어가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내 책상에 앉았다. 지금 난 내가 늘 원했던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가족에게서 떨어져,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 대부 분 내 이름조차 모르는 곳에서의 삶, 그래서 얼마간 내 마음 내키는 대 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그런 삶. 그런 상황이 되면 행복감, 희열, 소 망이 성취되었다는 만족감 등이 찾아오리라 생각했지만 내 마음속에 서는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