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슬로프스키, 이 세상과의 마지막 대화
지난 3월 13일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영화감독 크쥐쉬토프 키에슬롭스키(Krzysztof Kieslowski)는 폴란드영화계에 여전히 무거운 추모의 무드를 드러놓고 있다. 최근 폴란드 영화잡지는 폴란드 대중과 키에슬로프스키의 마지막 만남, 생전의 키에슬로프스키의 마지막 인터뷰를 공개했다. 세상을 떠나기 20일전인 지난 2월 24일 이미 다소 불편해 보이는 몸을 이끌고 포즈난의 제 8일극장에서 열린 관객 대담에 참석했다. 의 허락을 얻어 이 대답을 발췌소개한다.
키에슬로프스키 마르첼 워지인스키(폴란드의 중견 다큐멘터리감독)가 여러분에대해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몸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일부러 왔습니다. 사실은 동아 다이거나 하면 안되는데. 가장 쉬운것 부터, 그러니까... 여러분이 관심있는 주제부터 질문해 주세요. 제 생각엔 다큐멘터리영화도 아니고 필름 전반에 관한 이야기도 아닌 어떤 방법으로 그러니깐 삶에 관해 이야기 했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삶 역시 재미있으니까요. 누가 알겠어요 영화부터 이야기를 하는게 재미없을지.
사회자(마렉 헨드릭코프스키, 미코와이 야즈돈): 녀기 참석한 우리 모두가 질문을 한다면, 그러니깐 내일 예약하신 기차표를 취소할 수 있냐는 질문을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웃음) 곤란한데요, 저는 그렇게 말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니깐...
객석: 감독님 영화 중에서 어떠한 영화가 감독님께서 말하고자 했던 것에 가장 가까이 있습니까.
제가 진정으로 원했던 그런 영화를 만든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어떤 영화들은 35%정도밖에 만족하지 않아요. 예를들어 <어느 당원의 이력서>(Personal)는 그저 그랬고 <레드> 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도 역시 그저 그래요. <맹목적 기회>도 마찬가지. 다큐멘터리영화 중에 <병원> <첫사랑> <야간경비원의 시점에서>등은 제가 좋아하죠. 그 영화 (<야간 경비원의 시점으로부터> 광기에 차있고 위험한 - 그렇게 말하는 것이 - 그런 류의 사람들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을 구체적으로 기억할 필요가 있어요. 그는 '마리안 오수흐'라는 이름인데 바르샤바의 베모프라는 동네에 살고 있어요. 그에게 해를 입히고 싶지 않았고 지금도 그래요.
사회자: 어떻게 그 주인공을 발견했습니까.
인민연합사회출판사에서 매년 <내 삶의 일기장>이라는 일기모음을 발간했어요. 그중에 우쯔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사람의 일기를 발견했어요. 그 글은 그가 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었어요. 그것은 "필요한 것은 질서다. 모든것은 어떤 식으로 보여지기 위해 조직되어야 한다. 이 모든것의 해결점은 가능한 한 가장 빠르게 마무리 짓는데 달려있다." 라는 내용이었어요. 그 부분이 내게와 닿았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꼭 만들고 싶었어요. 비슷한 주인공을 찾으라고 조감독에게 부탁했고, 조감독은 그야말로 바르샤바 일대의 공장주변을 샅샅히 뒤지며 그런 경비원이 있는지 묻고 다녔어요. 그런데 모든 공장에 그런 경비원이 있었던 거예요! 문제는 오직 제가 누군가를 선택하는 일밖엔 없었어요. 저는 예를 들어 KC에서 경비원으로 일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을 원했지만 그런 것은 불가능했지요. 결국 가장 '멋진' 사람을 골랐습니다.
사회자: 그 경비원(영화의 주인공이었던)이 그 영화를 봤습니까.
네, 매혹됐었습니다. 그는 나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 영화 뒤에 크라쿠프에 <아마토르>(아마추어, ㅕㅇ어제목으로는 'CAMERA BUFF'로 개봉됨)를 찍으려고 내려갔었는데 어느 날 누군가가 방문을 두더리더군요. 그 '마리안'이 서 있었어요. 그리고 내게 이렇게 말했어요. "뭐예요... 이런 하느님 맙소사! 여기서 감독님 뭐하세요? 모든걸 던져버렸어요. 제기랄, 감독님 영화에 출연할 거예요..."
끝내 그 누구도 성공하지 않아요. 그리고 성공하는 것은 재미있지 않아요. 정말 흥미로운 것은 오직 '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되먹은 것 같아요. 우리는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어떤 길이 목표를 향해 가는 데 그리 도움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게 정말 재미있는 거예요. 영화도 똑같은 것 같아요.
객석: 왜 감독님은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을 그만두셨습니까.
많은 이유가 있었어요. 누군가를 영화화 할때의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흥미를 느끼는 그러나 영화화해서는 안 되는 그런 것을 찍은 뒤에 오는 그런 자책 때문 입니다. 사실 난 카메라로 사람들의 느낌 정열 감정을 지배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내 생애에서 몇 차레 감정을 영화화해서 성공한 적이 있어요. 실상은 카메라를 통해 그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난 행복 했습니다. <첫사랑>의 한 장면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 청년이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그야말로 울음을 터뜨리더군요. 그 뒤에 혼자서 생각 했어요. 내가 그 장면을 찍을 권리가 있을까. 아니면 없을까? 만약에 내가 그기에 없었더라도 그가 울음을 터뜨렸을까? 그리곤 결론이 떠오르는 거예요. 그때 그곳에 카메라를 들고 있어선 안 되는 것이었어요. 이것이 다큐멘터리영화를 그만둔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생각 햇습니다. 배우를 기용해서, 그리셀리액을 사서 눈에 넣고 말하는 거예요. "울어보세요..." 그러면 모든 것이 괜찮은 거예요. 배우들은 그들의 일을 하는 것이고 나는 그렇게 요구할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객석 : 감독님께서 영화제작을 그만둔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많은 이유로 영화만들기를 끝냈습니다. 피곤했기 때문입니다. 길지 않은 세월 동안 너무나 많은 영화를 만들었어요. 그것도 너무나 많이. 또한 스스로 날 밀어냈던던 감정과 쓸쓸함이 의심할 여지 없이 있었고, 제가 원했던 것과 가까워 지지도 않았어요. 그외에 인공적이고 상상적인 세계에 안주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삶에 동참하기를 그만 두었고, 그저 그전에 혼자 생각해왔던 그리고 친구인 피에시에비츠 (변호사이자 키에슬로프스키와 <십계>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함께 공동 시나리오 작업을 했음) 와 함께 생각했던 것을 시작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휴식없이 필름과 필름 사이를 떠돌아 다녔지요 진실하지 않은 어떤 세계에서 시간을 보냈고 따라서 내 인격이 제거되어 버렸어요. 왜냐하면 허구적인 문제들이 전에 없이 중요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죠. 주어진 그 순간의 인간들에 대해 이것을 해야 할지 저것을 이끌어가야 할지 진실한 것들이 중요한 것 같지 않게 되어버렸지요. 왜냐하면 생각들이 그 공간에 갇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땐 몹시 힘이 들었어요.
객석: 그렇다면 감독님께 지금은 '영화만들기'를 대신하는 게 무엇입니까.
인생... 평범한 삶입니다. 내겐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이 있어요. 가족이있고 오랜 친구가 있어요. 오랫동안 알아온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 시작할때 갑자기 병원 밖으로 날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난 우리들이 눈으로 볼 수 없는 것과, 아주 오래전부터 바뀌지 않는 것에 의지를 하고 있어요.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어요... 아직 질문하신 분께서는 젊기때문에 그것을 모르실 거예요. 그러나 나중엔 정말이지 되돌아 가기엔 너무나 힘이 들어요. 만약 어떤 가까운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느낀다면 그 사람과 그것이 좋건 나쁘건 나누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깊은 위기로 나타나고, 특히 되돌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합니다. 전 지금 절망적으로 내가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난 그들에게 죄가 있어요.
객석: <블루>의 끝 부분에 흘러나오는 '사랑의 찬송'은 꽤 상징적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그 찬송이 2천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그 찬송은 신과 종교에관한 단어가 들어있지 않은 특이한 성경대목 입니다. 오직 사랑에 대해서만 노래하고 있죠. 나는 오늘 그 '사랑의 찬송'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 노래는 우리 인간의 조건 - 삶을 추진하는 어떤 원동력으로서의 믿음, 불가결함, 숙명, 사랑 - 에 대해 잘 표현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사진기도 있고, 컴퓨터도 있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어요. 쓸 줄도 몰랐겠죠.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랑이 우리에게와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했겠죠.
객석: 우쯔영화학교 졸업 뒤에 영화를 만들면서 무엇이 가장 흥미로웠습니까.
처음 세상에대해 이야기해야 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학교를 끝냈을 때 카메라는 이 세계를 그릴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 했어요. 그래서 우유가게에대한 영화를 만들었어요. 노인들과 구걸하는 다른 게으름벵이들이 드나들고, 우유가게 앞에는 바이올린을 들고있는 조금 얼빠진 듯한 사람이 폴란드 국가를 연주하고 있었어요. 그때 이것이 의미심장 하다고 생각 했어요. 모두 촬영을 한 뒤에 카라바스에게 보여주었어요. 그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친구야. 그거알아? 만약에 에이젠슈타인이 여기 오도라도 이 필름 가지곤 도저히 편집할 수 없을거야." 그가 옳았어요. 왜냐하면 나는 내가 말하고자 했던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았기 때문이예요. 넓은 시야위에 영화를 구축하지 않았고, 오직 우유가게처럼 보이기 위해 감정만을 살려내려 한 것이었죠. 우리가 경단접시를 든 노인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겁니다. 고통과 같은 감정을 나눌 수 없었던 겁니다. 지금도 우쯔의 노인들은 구걸을 하고 있어요. 얼마전에 우쯔에 머무르는 동안 그들을 지켜 봤어요. 노인들이나 게으름뱅이들은 정확하게 똑같아요. 내가 그들을 가깝게 느끼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그들이 왜 구걸을 하고, 왜 말년의 구걸행위에 도달했을까. 그리고 그전에 무슨일이 있었을까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성공했습니까.
있잖아요, 말하자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끝내 그누구도 성공하지 않아요. 그리고 성공하는 것은 재미있지 않아요. 재미있는 것은 나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목표를 세울 필요는 있겠지만 그것을 성취하는 것은 정말 무의미한 것이예요. 하지만 정말 흥미로운것은 오직 '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되어먹은것 같아요. 우리는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어떤길이 목표를 향해 가는데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게 정말 재미있는 거예요. 영화도 똑같은것 같아요. 어떻게 그리고 모든 다른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경단을 게으름뱅이가 만드는 것도 훗날 구걸하는 노인들도 그래요... 어느 곳에ㅓ나 아마 그럴 거예요.
번역`정리/송일곤(폴란드 우쯔국립영화학교 1학년)
키에슬로프스키 연보
1975 <어느 당원의 이력서>(Personel)
1976 <상처>(Blizna), <고요한>(Spokoj)
1979 <아마추어>(Amator)
1981 <맹목적 기회>(Przypadek), <짧은 작업일>
(Krotki dzien pracy)
1984 <결말없음>(Boz konca)
1988 <십계>(Dekalog) 모세의 율법 '십계'를 현대
폴란드를 무대로 새롭게 풀었다. 율법이 가르치는
도덕과 윤리가 일상생활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착상과 애기 전개가 예측불허인 10편의 소품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Krotki film o zabijaniu)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Krotki film o milosci)
<십계> 연작 중 극장용으로 재폅집한 영화는 <살인
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두편, 후자가 바로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이란 제목으로 공개됐다.
엿보기 심리를 사랑으로 끌어올리는 불가사의한
편집의 힘
1991 <베로니카의 이중생활>(The Double Life of
Veronique) 자기와 똑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면?
이 신비로운 화두에 동구와 서구의 풍경이 겹쳐지는
매혹적인 장면.
1993 <세가지 색:블루>(Three Color: Blue, White, Red)
블루는 프랑스 삼색기 중 자유를 상징하는 색
영화 전편이 청색으로 덮힌다. 여주인공의 마음
한가운데로 들어가 사랑과 자유의 이율배반적인
관계를 따라간다.
<세가지 색: 화이트> 화이트는 평등을 상징
프랑스 애인과 헤어진 폴란드 청년이 경제적 평등없인
사랑이 불가능 하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돈을 모은다.
그러나 그 다음엔 사랑이 오는가.
1995 <세가지 색: 레드> '세가지 색' 시리즈의 완결편.
화두는 박애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자는 이ㅏㅇ과 개인의
행복은 어디서 어떻게 만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