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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온 택배[히이라기 사나카] ![](https://contents.kyobobook.co.kr/sih/fit-in/458x0/pdt/9791194293095.jpg) 오사베는 생각했다. 만일 그때 후쿠이에가 동아리방에서 이를 악물고 꾹 참았더라면 그날 한마디도 못 한 걸 평생 후회했을 거라고. 어떤 이유로도 폭력을 정당화해서는 안 되지만,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자기감정과 분노를 솔직히 표출할 수 있었던 후쿠이에가 부러웠다. 어떤 의미에서는 필요한 순간에 화를 낼 줄 아는 후쿠이에가 훨씬 더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닐까. “잘 들어, 여전히 소중한 사람이라서 그런 짓은 더더욱 못 해. 지금 그 사람이 행복하면 난 그걸로 만족해.” 2024. 11. 26.
오늘도 돌아갑니다, 풍진동 LP 가게 [임진평 , 고희은] ![](https://contents.kyobobook.co.kr/sih/fit-in/458x0/pdt/9791130657820.jpg) 다림은 더없이 조심스레 정원이 건넨 만년필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한 번 더 보았다. ‘정안이 정원에게’라고 적힌 각인을. 정안을 만난 적은 없지만, 그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을 거다. 사람은 기억으로 살아가니까. 좋은 기억 때문에 사는 사람도 있고 나쁜 기억 때문에 사는 이도 있다. 다림은 사실 후자에 더 가까웠다.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을 가슴에 깊이 새기며 그 기억을 보상받기 위해 기를 쓰고 살아야겠다고 매번 다짐해 왔다.며칠 전 정원은 정안을 꿈에서 만났다. 꿈속에서도 그게 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슬펐다.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깨면 정안은 사라.. 2024. 11. 25.
아직도 내가 낯선 나에게 [사라 큐브릭] 요즘 사람들은 종종 진정성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누군가가 어떤 행동을 한 다음에 “나는 그저 진정성 있게 행동했을 뿐이야”라고 선언한다면, 그건 대개 방금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어를 오용한 것이다. 진정성이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특정한 생각을 회피하려는 경우가 많다. 상처를 입거나 일이 힘들거나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는 세상에 드러낸 모습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유를 오용하거나 진정성을 위태롭게 할 때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한다. 2024. 11. 24.
독서의 뇌과학 [가와시마 류타] 영상에는 상상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영화 감상이란 영화감독이 만든 사고 프레임 속으로 관객이 들어가는 행위다. 그래서 영화를 본 관객들은 모두가 같은 세계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반면에 소설을 읽으면 독자는 제각기 다른 세계관을 가질 수 있다. 소설 속에 묘사된 등장인물들의 모습이나 장면들이 독자에게 각기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저마다 경험한 바가 다르고 느끼는 감각도 다르기에 당연하게 발생하는 차이라 할 수 있다. 2024. 11. 24.
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 [강용수] 심한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자신의 정신적 고통이 워낙 크다 보니 자살에 따른 육체적 고통이 크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둘러 결단을 내리는 일이 많다. 그러나 자살이 어떤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2024. 11. 24.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나를 떠나지 말고, 나를 버려라. 소리는 잠자코 있다 입을 열었다. —엄마. —응? —나 그거 가져도 돼? —뭐? —미래라는 말. 그러니 다른 사람들 삶에는 또 얼마나 많은 기만이 있을까? 이야기가 가장 무서워질 때는 언제인가?’ 소리가 슬픈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때.’ 그런데 채운은 지금 무서운 이야기 속에 갇혀 있는 모양이라고, 거기서 잘 빠져나오도록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리는 곧 채운과 만날 예정이었고, 그건 하나의 비밀이 다른 비밀을 돕는다는 뜻이었다. 순간 지우가 풋 하고 싱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날 본 표정 중 가장 밝은 얼굴이었다. 지우와 헤어진 뒤에도 소리는 종종 그 미소를 떠올렸다. 그렇다고 막 엄청난 사랑에 빠졌거나 한 건 아니었다. 소리는 그저 그 .. 2024.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