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381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박상영] 아침 일찍 출근해서 싫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억지로 만들어지는 루틴이 때로는 인간을 구원하기도 한다. 싫은 사람일지언정 그가 주는 어떤 스트레스가 긍정적인 자극이 되어주기도 하며, 한 줌의 월급은 지푸라기처럼 날아가버릴 수 있는 생의 감각을 현실에 묶어놓기도 한다. 밥벌이는 참 더럽고 치사하지만, 인간에게, 모든 생명에게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생이라는 명제 앞에서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바위를 짊어진 시시포스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나는 이제 더 이상 거창한 꿈과 목표를, 희망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 삶이 어떤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감각하고 있는 현실의 연속이라 여기기로 했다. 현실이 현실을 살게 하고, 하루가 또 하루를 버티게 만들기도 한다. 설사 오늘 밤도 .. 2024. 12. 14. 다정한 매일매일 [백수린] 행복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상을 괄호 안에 넣어두는 휴가가 삶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것처럼, 인간에게는 때로 진실을 괄호 안에 넣어두는 거짓말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부드러운 모래가 나른한 꿈처럼 펼쳐지고, 뜨거운 태양 아래 올리브가 익는 곳에서의 휴가를 닮은, 미혹으로 가득 찼지만 아름다운 거짓말이. 하지만 여름의 끝을 알리는 폭우마저 그치고 나면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트렁크를 창고 깊숙이 넣어두어야만 한다. 틀림없이 쓸쓸하고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한 일이지만, 계절은 바뀌고, 괄호 안에 넣어두었던 것들과 대면해야 하는 시간은 우리를 어김없이 찾아오니까.죽는 것과 사는 것, 무언가를 쌓기 위해 시간을 견디고 오래도록 한자리를 지키는 것과 축적한 것들을 .. 2024. 12. 14. 김미경의 딥마인드 [김미경]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마음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의심 없이 그 목소리가 나라고 믿는다. 그게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내가 하는 말이니 시키는 대로 한다. 뛰라면 뛰고 죽으라면 죽는다. 그런데 그게 내가 아닐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처음부터 의심하고 가려내야 한다. 무엇이 진짜 내가 하는 말이고 잇마인드가 하는 말인지. 그래야 진정 잇이 아닌 아이엠으로,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 수 있다. 2024. 12. 9. 시티 뷰 [우신영]  “흉터 가리는 데도 돈이 많이 드네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안 생기는 게 좋죠.” “그래서 전 안 보이는 데 내잖아요.” “그게 더 나쁜 건 알죠?” “의사 선생님은 죽고 싶을 때가 없어요? 난 내가 비정상이라고 생각 안 해요. 깨어 있을 때 가끔 졸린 것처럼 살아 있을 때 가끔 죽고 싶은 것도 정상 아닌가요.” “신선한 관점이네요.” 2024. 12. 9. 아찰란 피크닉 [오수완] p96"네 이야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요즘은 뭘 싫어하고 뭘 좋아하는지 그런 거 있잖아. 네 마음 속에서 떠오르는 거면 뭐든지. 그런 대화를 너무 오래 안 한 것 같아. 나 말고 다른 사람하고 그런 이야기 해?"p200새는 어떻게 허공을 향해 뛰어들 수 있는 걸까? 높은 곳에 올라가면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사방에서 뭔 가가 나를 팽팽하게 짓누르며 노려보는 것 같은 기분이. 그 게 뭐였는지 알아? 바로 허공이었어. 아무것도 없는 텅.. 2024. 12. 9.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p20"모르겠으면 하면 되는 건가?" "나는 모르겠으면 그냥 하거든. 아까 인사한 선생님인 것 같은데 또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으면 그냥 해. 자 기 전에 양치를 했나 안 했나 헷갈릴 때도 그냥 하고." "그럼 나도 그냥 해야겠네."p66"장마가 그런데 어쩔 것이야, 다음을 기다려봐야지. 그 런다고 바다 소금이 어디 가버리는 것도 아니고. 사는 게. 말이야, 영두야. 꼭 차 다니는 도로 같은 거라서 언젠가는 유턴이 나오게 돼. 아줌마가 요즘 운전을 배워본 게 그래." "유턴이요?" "응, 그러니까 돌아올 곳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알고 있 으면 사람은 걱정이 없어. .. 2024. 12. 9. 이전 1 2 3 4 5 ··· 64 다음